2010. 11. 19. 18:45

백수된 기념으로 어쩌다보니 몽이랑 둘레길 걷기 계획을 잡고 있더라.

일단 배낭속에 여벌 티(1), 속옷(2), 등산양말(2), 세면용품, 스킨로션, 라이너, 아침용 슾, 스텐레스컵, 물통, MP3, 기형도 시집, 담배, 스포츠타월, 잠옷용 트레이닝복 상 하의, 선글래스, 둘레길 가이드북. 그리고 아침에 바르고 빼먹은 선블록 orz...
출발 옷차림으로 아침에 춥길래 껴입은 등산바지두 벌, 티셔츠, 재킷, 모자, 등산양말, 등산화, 스틱(2), 목베개겸 보온용 숄.

저 길을 걸을셈이다.



첫 날
인천터미널 출발(8:00 am) ▶ 남원고속터미널도착(12:20 pm) ▶(택시로 이동) 남원 시외버스터미널(12:50 pm) ▶ 주천 도착(1:15 pm) ▶ 행정마을 도착(6:00 pm)


주천행 버스시간을 확인해보니 꽤나 넉넉하게 남은 시간이라 요러고 동네구석을 헤매다니며 시간을 때우는데, 저 멀리서 주천행 버스가 나타나서 식겁했다. 예상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빨라서 저거 놓치면 끝장이라고 두다다 뛰었더니만 완전 친절하신 기사님 우리가 불쌍했던지 가시던 길에 세워주시더라. 아무래도 버스시간 확인하면서 잠시 정신줄을 놓았는갑다.


자아, 본격적으로 둘레길 시작되시겠다. 주천 ▶ 행정마을 (소요시간 4시간 45분)


주천에 도착하면 버스 내리는 지점에 요렇게 생긴 안내소가 있다. 여기에서 둘레길 지도와 안내서 득템할 수있으니 필히 챙겨야 함(더불어 안내하시는 분도 꼼꼼하게 알려주시고 친절하세욤)


처음부터 이정표따위 무시하고 걷기 시작. 이정표는 도로쪽으로 나와있는데 흙길을 걷고 싶길래 논둑길을 따라 갈대바람 맞으며 느긋하게 걸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정표길을 따라갔어야 구룡폭포와 육모정을 볼 수 있는 길이었다. 어쩐지 분명 1코스에 폭포가 있었는데 우린 물 구경도 못해봤다 했으.



구룡치까지 올라가는 길은 가벼운 트래킹정도만 생각하고 왔던 산행초보자에게는 시련을 선사하네욤 :) 옴팡이가 꼭 챙겨가라던 스틱 2개의 위엄이 빛을 발한 무한 오르막길. 이게 어딜봐서 둘레길이냐, 지리산 종주를 잘못알고 온 거 아닌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함.


구룡치 찍고 요 내리막길을 따라 걷다보면 여기부터는 무난한 평지길.


곳곳에 서 있던 이정표만 잘 따라가도 나같은 길치에겐 너무나 은혜로운 둘레길이건만 무식한게 용감하다고 틈만나면 딴짓으로 이정표를 놓치거나 대놓고 이정표 무시하며 다른 길을 찾는 무리수를 감행. 덕분에 가뜩이나 느린 걸음, 숙소 찾아 행정마을에 도착하니 해는 이미 떨어졌다.


미리 알아둔 행정마을 인동할머니댁(011-9131-1071)에서 하루 신세를 졌다. 첫날부터 저질체력을 고려 않고 무리했던터라 손하나 까딱하기도 귀찮아 그대로 뻗었다. 그래도 1인당 5000원에 무한리필 제공되는 할머니표 밥상은 꼭꼭 챙겨먹어야 함(더불어 목장갑 득템으로 의욕게이지 한 칸 상승).


사과와 밤 득템과 함께 시작된 이틑날. 행정마을 출발(10:20 am) ▶ 인월(2:00 pm)에서 점심 ▶ 매동마을 도착(6:00 pm)




차들만 다니던 도로를 따라 걷다 이상한 낌새에 지도를 뒤적거리던 차에 지나던 농협직원분께서 길을 잘못 들었다며 알려주셔서 다시 턴. 그래도 꿋꿋하게 이정표따위 무시하고 논둑길로 걸었다.




점심이나 먹을까 해서 들렀던 인월인데, 어째 낯익은 거리가 이상해 살펴보니 지난 여름에 놀러왔던 곳일세. 오밤중에 치킨사러 찾았던 페리카나, 반가워어 :)




우리가 가야할 곳은 저어기~
...를 지나 매동마을임. 갈 길이 아직도 멀었건만 이미 해는 뉘엿뉘엿....


숙소 도착하면 일단은 뻗는다. 괜찮아, 저질체력이어도 쨌거나 오늘 일정도 무사히 끝냈잖어. 돌아가면 어떻고 헤매면 어떻고 뻘짓으로 점철된다고 어떠하리. 살아있으니 됐자네에.






멀리서 보던 장항마을도 좋았지만, 숙소를 잡은 매동마을 역시 곳곳이 아기자기하게 예쁜 곳이라 새벽아침 산책길이 꽤나 즐거웠다.

사흘째. 어느정도 컨디션 회복하고 기세좋게 출발. 매동마을 출발(9:30 am) ▶ 동강마을 도착(6:00 pm)



슾으로 때우고 걷는다는 건 역시 무리수. 마을 벗어나자마자 쉼터를 찾아 아침겸 점심 해결. 초큼 많이 비싸니 엔간하면 숙소에서 뜨끈하고 인정넘치는 아침을 챙겨먹는 게 나을 거 같다.


숲속 동물들이 종종와서 물을 마신다는 옹달샘인데, 저런데 빠지면 쥐도새도 모르게 죽을 수 도 있을 것 같아 공포스럽기 짝이 없었다. 내 옹달샘에 대한 환상은 이런 게 아니었거등?!


아놔... 돌탑에 소원비는 연출컷을 지시했더니만 근처에 돌이 없다고 땅에 박힌 돌을 파내고 계신 저 분을 어째야 하나. 결국은 돌도 못 파내고(그게 가당키나 하냐 -0-) 돌탑위에 본인 머리를 얹더라.


오르고 또 오르다보면 언젠간 끝나고 또 내리막길이 나오겠지, 란 일념으로 걷는데 당최 이놈의 오르막은 왜 끝이 안 나는 거냐.


중간에 들른 쉼터에서 식혜 한 잔을 원샷하고 언젠가 올 그들을 위해 메세지 한 줄도 꾸욱 박아놨다.




코스 중 가장 비추였던 아스팔트길. 차라리 바로 전에 걸은 바위계곡이 훨씬 더 편했다. 저 딱딱한 아스팔트를 걷다보니 지리산 둘레길을 찾은 의미가 없지 싶더라. 발은 발대로 아프고 몸은 몸대로 만신창이고 날은 저물어 가고. 그 와중에 작렬하는 몽이의 몸개그는 처절하기까지 하다.


생명의 은인, 은혜로운 동강마을 이장님 내외분(해 떨어진 산 속에서 길은 잃었지, 풀 숲에서 정체모를 야생동물은 우릴 자꾸 쫓아오지, 어디로 가야할 지 갈피도 안 잡히고 인가도 전혀없는 상황에서 부랴부랴 안내서에 적힌 이장님 전화번호를 찾아 연락을 드렸더니만 우리를 찾아와 주셨다. 완전 당황한 상태라 막막 횡설수설하는 내 전화에 거기까지 찾아오셔서는 우릴 픽업해 댁으로 데려가 맛난 저녁과 뜨끈한 황토방을 제공해주셨다. 저녁을 먹고 난 후엔 마을 어르신 몇 분이 치킨을 사들고 방문하셔서 다른 둘레꾼들과 치킨 뜯어가며 담소도 나누고 했더니만 쓰나미로 몰려오던 하루의 피로가 싹 가셨음.
동강마을이 더더욱 발전하고 둘레꾼이 많이 찾는 곳이 되길 바랄 게요, (살려주셔서)고마웠습니다아.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은혜로운 동강마을 김태조 이장님께 연락하세요오. 010-9363-6877

쨌거나, 하루 푹 쉬고 어제의 생쇼고생따윈잊고 시작하는 마지막날 일정되겠음.
동강마을 출발(9:00 am) ▶ 수철마을 도착(1:40 pm) ▶ (택시로 이동) ▶ 산청(2:20 pm) ▶ 남원 시외버스 터미널 도착(3:40 pm) ▶ (택시로 이동) ▶ 남원 고속버스 터미널 출발(6:50 pm) ▶ 까아 인천이다! (11:00 pm)


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이다. 묘역까지 올라가보진 못하고 교육관만 둘러봤는데, 여전히 사건에 대해 입을 열어야 할 자들이 침묵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은 아직도 멀었는가.



상사 폭포까지 오르는 길은 아기자기한 숲속 오솔길 같은 느낌이라 좋더라. 코스 후반부로 갈수록 불친절해지는 이정표덕에 어제는 길까지 헤매며 고생을 했는데 5코스는 딱히 갈림길이라 할만한 곳 없이 주욱 이어지는 길이라 걷기도 편하고 조용한 숲길을 따라 걸으니 산림욕이 따로 없네.





오르고 오르다보니 산 정상. 알고보면 둘레길은 여느산 못잖은 등산로임. 얘도 지리산이었어, 만만하게 보고 덤볐다가 된통 당했다. 저어 멀리 보이는 마을이 내가 지나온 길들이다.



행군중인 공사생도들에게 일일이 인사해주느라 기운 빠졌다. 느넨 젊어서 좋겠다, 나는 어기적 어기적 걷는 길을 가비얍게 날아다니는 구나T_T


수철마을에서 날 맞이해주는 동네 고양이들과 함께 지리산 둘레길은 끄읕 -



택시까지 타고 산청으로 왔는데 정작 남원에서 인천 출발하는 버스시간까지는 한참이 남아 밥이나 먹자고 근처를 배회하다 찾아낸 임실치즈피자 >_< 인천에서는 먹기 힘든 거라 이곳까지 온 김에 먹어보자고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마음 같아선 한판 더 시켜서 인천으로 들고오고 싶었는데 차마 버스 안에 냄새 진동하는 피자를 들고 탈 자신이 없어 패스.



으헤헤헤... 진짜 집이다. 고작해야 3박 4일간의 일정이었는데 다시 밟는 인천땅은 퀴퀴하기 짝이 없구나. 정신없고 어딜가나 사람천지인 도시는 싫으나 그래도 집에 들어오니 마음은 편하네.

덧> 몽몽이 고생많았다. 지리산 둘레길 두 번은 힘들까? 어우 다시 가고 싶어졌어 ☞☜

덧 2> 인권해제 사진들까지 몽창해서 압축파일로 올려놨으니 다운 받으세욤.
http://mail26.paran.com/write/download.php?bigfile=d2FsV21RZTl1YVFHVU5QcGxjMUdXaFlsdWNka1dCYXdpWVpYQ0pjaHBicGluNUxqd2JnMm4wTm15YXdHVzlhdGhaMVRtMEx2d1JJRGpJTjJ6TEUyamdMdjVZa3l6OU15ekxRMlRoTWp3YWtYakJNb3haMFhUSmFBdWNWR25GSnl0WTlXMjRZdXVZNDJXOVl0eUpGbUdoY3ZBY0ozWFFaOW9ZQm1YbGFuamJoVzJGTHAyYklDejVMdzBZRVh6SkxoNWJFaVQ1TWp4YkEyVDBNbXdjSUd6OUx5M2Q4RFMwTTRFTTlDU1pQaW9hUldYZFl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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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seudoZ